서울 크기에 태양 질량이 압축된 별
문득 어릴 때 과학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이 생각났다.
별이 죽으면 폭발한다는 내용이었는데, 폭발 뒤에 뭔가가 남는다고 했다.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. 그냥 ‘잔해’라는 단어로 퉁쳐져 있었는데,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잔해가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인 물체 중 하나였다. 중성자별이라는 이름도 그렇고, 그 실체를 알고 났을 때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.
태양이 죽으면 뭐가 남을까
별은 영원히 빛나지 않는다.
태양 같은 별도 약 50억 년 후에는 연료가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. 태양 정도 질량의 별은 죽을 때 비교적 조용하게 바깥층을 날려버리고 핵만 남기는데, 그게 백색왜성이다. 그런데 태양보다 훨씬 무거운 별, 대략 태양 질량의 8배에서 20배 사이인 별이 죽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. 엄청난 규모의 폭발, 즉 초신성(supernova, 별이 생애 마지막에 일으키는 거대 폭발) 이 일어난다.

초신성 폭발은 어느 정도냐면, 폭발 순간 방출되는 에너지가 태양이 100억 년 동안 내뿜는 총 에너지보다 많다. 0.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. 그 폭발이 지나간 뒤, 별의 핵이 남는다. 이게 바로 중성자별이다.
중성자별의 크기를 들으면 보통 한 번 더 묻는다. 지름이 약 20킬로미터다. 서울 도심에서 수원까지의 거리쯤 된다. 그 안에 들어 있는 질량은 태양 질량의 1.4배에서 2배 정도. 태양은 지구를 100만 개 이상 집어넣을 수 있는 크기인데, 그 태양보다 무거운 물질이 서울 크기 공 하나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.
중성자별 안은 어떤 상태일까
물질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단계별로 따라가 보자.
⚛️ 원자가 부서진다
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. 원자는 가운데 핵(양성자+중성자)이 있고, 그 주위를 전자가 돈다. 원자의 크기에서 핵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마어마하게 작다. 핵이 야구공 크기라면, 전자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 맴돌고, 그 사이는 전부 텅 빈 공간이다. 우리 몸도 사실 대부분이 빈 공간인 셈이다.
초신성 폭발 직후, 별의 핵에 가해지는 중력이 너무 강해서 이 빈 공간이 전부 짜부라진다. 전자가 양성자 안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중성자(neutron, 전하가 없는 입자) 만 남는다. 원자 구조가 완전히 무너지고, 중성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거대한 ‘중성자 덩어리’가 만들어진다. 이게 중성자별의 정체다.
🏋️ 밀도가 얼마나 극단적이냐면
중성자별의 밀도는 1세제곱센티미터당 약 4억 톤이다. 각설탕 하나 크기의 중성자별 물질을 지구로 가져오면, 그 무게가 에베레스트산보다 무겁다. 현실에서 상상하기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. 이 정도 밀도가 되면 물리법칙도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.

🌀 펄사 —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
중성자별 중에는 펄사(pulsar, 빠르게 회전하며 전파를 내뿜는 중성자별) 라고 불리는 종류가 있다. 별이 죽으면서 핵이 극도로 수축할 때 회전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다.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모으면 빠르게 도는 것과 같은 원리다. 그 결과 중성자별 일부는 1초에 700번 이상 회전한다. 1초에 700번. 선풍기 날개도 이 속도에는 한참 못 미친다
이렇게 빠르게 돌면서 자기장을 통해 전파를 뿜어내는데, 그게 등대처럼 규칙적으로 지구 방향을 스쳐 지나간다. 이 신호가 어찌나 정확한지, NASA 중성자별 과학 페이지에 따르면 일부 펄사는 원자시계보다 더 정확할 정도다. 우주 한복판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시계인 셈이다.
🔬 내부는 아직도 모른다
표면 아래로 들어가면 인류는 솔직히 잘 모른다. 중성자별 내부는 우주에서 우리가 직접 관측할 수 없는, 가장 극단적인 상태 중 하나다. 중성자들이 더 으깨지면서 쿼크(quark, 중성자와 양성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)가 흘러다니는 ‘쿼크-글루온 플라스마’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 있고, 아예 우리가 모르는 형태의 물질이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. 중성자별은 지구에서 절대 재현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, 이론을 검증하는 게 극도로 어렵다.
인류가 알아낸 것들
📡 처음 발견은 실수(?) 에 가까웠다
1967년, 영국의 천문학자 조슬린 벨 버넬(Jocelyn Bell Burnell)은 전파망원경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이상한 신호를 발견했다.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처음엔 외계인 신호라는 농담 섞인 별명(‘LGM-1’, Little Green Men)까지 붙었다. 하지만 곧 이게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, 즉 펄사에서 오는 신호임이 밝혀졌다. 이 발견은 이후 노벨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(버넬 본인은 수상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뒷이야기도 있다).
🌊 중성자별끼리 충돌하면 금이 생긴다?
2017년,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두 중성자별이 충돌하는 장면이 관측됐다. LIGO(라이고, 중력파 검출기) 가 중력파를 잡아냈고, 동시에 전 세계 70개 이상의 천문대가 빛 신호를 함께 관측했다. 이른바 ‘다중 신호 천문학’의 시대가 열린 순간이었다. Universe Today의 중성자별 충돌 관측 보도에서도 이 사건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.
이 충돌에서 밝혀진 놀라운 사실이 있다. 우주에 존재하는 금, 백금,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바로 이 중성자별 충돌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. 우리가 손가락에 끼는 금반지의 원자들이 수십억 년 전 우주 어딘가에서 충돌한 두 중성자별의 잔해라는 뜻이다.
🛰️ 니서(NICER) 중성자별 전용 망원경
NASA의 NICER 미션은 국제우주정거장(ISS)에 부착된 X선 망원경으로, 중성자별의 크기와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목표다. 2017년부터 운용 중이며, 중성자별 내부 상태를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데 핵심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. 2019년에는 중성자별의 반지름을 지금까지 중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.
🔭 한국도 들여다보는 중
한국천문연구원도 중성자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. KVN(한국우주전파관측망)을 통해 펄사 관측을 수행하고 있으며, 국제 공동 연구에도 활발히 참여 중이다. 우주의 가장 극단적인 현장을 들여다보는 데 한국 과학자들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 자랑스럽다.